공정거래 사건 중 거래상 지위 남용 관련 사건들에 대한 집행 시스템은 전면 개정해야한다

공정거래법을 처음 제정할 때에 일본의 독점금지법을 많이 참조했는데, 특히 불공정거래행위 부분은 사실상 똑 같았지요. 그래서 제가 1993년에 공정위에 와서 참고로 한 “불공정거래행위 심사지침”은 일본의 자료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 특히 문제가 되는 규정이 “우월적 지위 남용”이었는데, 일본도 초기 독점금지법에는 이 규정이 없었다가 백화점의 입점업체/납품업체에 대한 횡포가 사회적 문제가 된 이후 불공정거래행위 유형의 하나로 규정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뭔가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업자의 “갑질”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이 규정을 근거로 공정위가 제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일본의 독점금지법과 똑 같이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에서도 신고는 사건의 ‘단서’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에 신고인에게 어떤 실질적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례에서도 인정하고 있지만 실제 법운용에 있어서는 우리나라 공정위는 일본과 달리 ‘모든 신고’를 검토해서 서면으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일본 공정위는 신고는 사건의 단서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지하는 회신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차이가 같은 조문을 갖고 있으면서도 업무의 양과 질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가져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모든 신고에 대해 검토해서 우리나라와 같이 처리하는 국가는 본 적이 없고, (제가 확인한 내용은 아닌데) 터키가 우리나라를 모델로 제도를 만들려다 EU경쟁당국으로부터 바람직한 집행시스템이 아니라고 지적받고 포기했다는(들은 얘기로는 더 심한 표현이었는데 확인도 안하고 그대로 옮기기엔 좀 그래서 부드럽게 표현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공정위는 불공정거래행위 사건, 하도급사건 등 거래상 지위 남용을 기초로 생겨난 각종 규제와 관련한 사건들을 제대로 처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법의 해석에 맞게 운용했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그동안의 업무관행을 뒤집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현재와 같은 업무처리 시스템을 유지할 수도 없을 듯 싶고요. 대안을 찾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하고 있는 안은 있는데, 좀 더 다듬어야 하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도 누군가 관심을 가질 지 모르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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