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 수험생에게 보낸 편지[2004-12-20 18:36:53]

예전에 제가 어느 수험생에게 질문에 대한 답변과 함께 보낸 여담입니다. 예전 글 읽다가 이 곳에 옮겨 놓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수험생활이 제법 길었습니다.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스타일(나쁜 말로는 ’산만’하고 좋은 말로는 ’멀티태스킹’)이다 보니 외무고시, 행정고시, 사법시험 이렇게 왔다 갔다 했더랬지요. 어쩌다 1차는 모두 합격해 보았습니다. 외무고시는 당시 20명 최종합격일 때고, 행정고시 재경직은 40명 최종합격일 때 였으니 커트라인 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만 나름대로의 공부방법(당시에는 스스로 ’프로수험생’이라는 표현을 썼지요)으로 1차는 무난히 합격했더랬습니다.

행시 재경직을 응시했을 때 1차에서 민법총칙 100점, 영어는 95점이라는 점수는 한번씩 뽐낼 때 언급하는 점수입니다. 사법시험에서도 당시 독어선택자가 80퍼센트 이상 합격하고 영어선택이 20퍼센트도 안될 때 영어선택해서 합격했었는데(당시 시험과목 8개인데 커트라인이 84점 약간 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에는 경제학 95, 국사 95, 세계사 95, 영어 85 이렇게 비법학과목이 약진해서 합격했더랬습니다. 이 해에 행정고시 법무직에 아주 ’운좋게’ 최종합격하는 바람에 사법시험 2차는 포기하고 연수원으로 직행했었지요.

사실 시험공부 오래한 것이 무슨 자랑이겠습니까. 특히 1차만 합격하고 2차가 안 될 때에는 제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많이 의기소침해 지기도 했습니다. 그 때 지금 대구에서 변호사로 활동하시는 김승규 선배의 충고로 정신이 번쩍 들었지요. 자세한 내용은 생략합니다만, 아무튼 그 때 시험과목 대신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철학적 사고를 위한 제규칙’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에 사법시험 1차와 행시 법무직 최종합격하면서 제대로 된 공부방법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기회가 되면 비록 잔소리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공부방법에 대한 얘기를 후배들에게 자주 들려주곤 했습니다. 아래 내용은 그 중 시험을 앞둔 수험생에게 보낸 답글입니다만, 마침 사법시험 1차가 다가오고 있어, 옛생각도 나는 김에 글 옮겨 봅니다(경미한 부분에 대해 편집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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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오랜 수험생활 중 유명한 일본의 민법교수인 아처영(我妻榮)교수의 ’민법안내’라는 책을 접하고는 충격을 받았더랬습니다. 책의 장, 절의 제목들이나 설명들이 너무나 우리의 사고구조와 잘 맞아떨어져서 책읽기가 그렇게 수월하고 또한 깨닫는 점이 많았습니다.

한 예로 우리나라 교재같으면 “정의의 의의”라고 할 것을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타이틀을 답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의문을 갖게 되지요. 미국의 어느 교수가 학습법에 대해 쓴 책을 하나 읽었더랬는데, 그기서는 타이틀을 질문으로 만들어서 읽어라고 하는 방법을 제시하더군요. 근데 아처영교수는 아예 그런 노력을 들일 필요도 없이 타이틀을 질문으로 달아주니까 얼마나 쉽게 이해 됩니까. 게다가 어투도 너무나 편하고 자상해서 존경심마저 생기더군요.

우리나라의 천편일률적인 법서의 타이틀을 생각하면, 물론 그것이 효율적인지는 모르지만, 대학의 교재로서는 문제가 많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좀 건방진 생각일런지는 모르지만, 저는 학생보다는 교사 또는 교수에게 문제가 훨씬 더 많다는 심증을 갖고 있습니다. 즉, 교수법에 대해 노력하지 않는 교사, 교수들이 학생들의 지적 능력을 억제한다는 생각을 합니다.여담으로 제 생각을 늘어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시점에서는 공부의 범위를 더 넓히지 마시고, 이때까지 공부한 것 중에서 정말 시험에 나올만한 것들 위주로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4주 남았다면 가장 바람직한 것은 시험에 자주 나오는 쟁점 및 출제가능성이 아주 높은 쟁점 위주로 2주 정도 공부하고, 1주는 혹시 나오면 어떡하나 싶은 것들에 투자하고(심적 안정을 위해), 다시 마지막 1주는 시험출제가능성이 높은 쟁점을 눈여겨 보고, 시험 바로 전날엔 가급적 가벼운 운동(탁구나 등산)으로 오후를 보낸 후 너무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드는 것을 권합니다.

시험당일 아침에는 절대 가방 무겁게 갖고 가지 마시고 그저 요약노트나 법전 정도 가볍게 들고 가시기 바랍니다. 볼 것 많이 가지고 가면 머리 아파집니다. 심적 부담도 커지고요. 시험당일의 컨디션 조절만 잘 해도 평균 2점이상은 올라간다고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야구에서만 마무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시험에서도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라집니다. 아무쪼록 마무리 잘 하셔서 좋은 성과 얻기를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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