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가라


계속 가라

요즘 읽고 있는 책, “{나다움}으로 시작하는 퍼스널 브랜딩(마이크 김 지음, 이한이 옮김, 현대지성 2024)”의 말미에 나오는 글의 일부를 옮겨 본다.

맑은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싸우는 날들은 바람이나 비를 맞는 기분과 같다. 당신이 노력할수록 맑은 날이 당신을 요리조리 피하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붙잡을 나뭇가지가 하나라도 있는지 찾아다니며 짙은 안개를 헤치고 나아가는 기분이 드는 날도 있을 것이다. 가끔 좌절도 하겠지만 지금 있는 곳에 주저앉아 날씨가 개기만을 기다린다면 안개 너머에 있는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다(p. 272~273).

퍼스널 브랜딩

퍼스널 브랜딩과 관련해서 가장 먼저 접한 책은 Tom Peters의 WOW Project 1(내 이름은 브랜드다)라는 역서였고 그 책이 맘에 들어 Tom Peters의 책을 아마존으로 여럿 사 보았다. 매력적일 수록 쉽지 않다. 평범해 보이는 얘기도 실천하려면 쉽지 않은데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그 책 이후로는 직접적으로 퍼스널 브랜딩에 관한 책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마이크 김의 책이 처음이다.

나의 JOB은?

원래 조직생활을 할 때에도 나는 프로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조직에 함몰되기 보다는 조직에 성과로 보답하는 1인 회사라는 마인드로 일했다. 비록 내 이름을 내세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공정거래+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나의 “업”으로 생각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해서 읽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틈나면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의 필요성, 중요성을 강조하고 다녔다. 페이스북에서는 스스로 “컴플라이언스전도사”라는 별명을 붙이고 있다.

다행히 공정거래위원회에서의 규제 업무경험과 두산그룹에서의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운영 및 공정거래 리스크 관리 업무 경험을 갖게 된 점이 나의 “업”을 세우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로펌에 입사해서는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확산을 위해 노력했지만 제도적 뒷받침이 따라주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어려움을 탓하기에는 내가 여전히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변명을 하는 것은 프로답지 못하다. 오히려 로펌 고문이라는 따뜻한 보금자리에 안주하고 그 상황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다는 반성을 한다.

계속 가자!

하기로 약속해 놓고 아직 못하고 있는 일들도 많다. 부끄럽더라도 다시 추스리고 가던 길을 가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이 제목은 남다르게 다가 온다.

“계속 가라”

Don’t reinvent the wheel!

오늘 메일함의 어느 메일 제목에서 발견한 이 관용어에 대해 구글링해 보니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바퀴(wheel)’는 이미 오래 전에 발명되어 잘 굴러가고 있는데, 처음부터 다시 바퀴를 발명하겠다(reinvent)고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니, ‘reinvent the wheel’은 ‘이미 있는 것을 쓸데없이 다시 개발하다,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다’는 뜻.
짐작대로, 자기들이 이미 제3자 리스크 평가 툴을 갖고 있으니 따로 만들려고 노력하지 말고, 당신이 고유한 요구사항이 있더라도 다 맞춰줄 수 있다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사실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어느 정도 표준화된 모듈은 거의 다 공개되어 있으니 그런 자료를 잘 찾아보고 자기가 속한 조직에 커스터마이징하면 괜찮은 수준의 프로그램을 구축해서 운용할 수 있다. 다만 어느 정도 수준인지, 제대로 구축해서 운용하고 있는 것인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필요하다. “제게 일 좀 주세요~” 하는 느낌이 들어 이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 좀 멋적긴 하지만 누구든 이 분야 전문가라면 할 수 밖에 없는 얘기. 영어표현 하나 배우는 김에 글 하나 올린다.

블로그 툴로서 Ulysses 채택

그동안 블로그 툴로서 MarsEdit를 주로 사용했는데 Ulyesses 앱의 블로그 관리 기능이 강화되어 이 앱도 사용해 본다. 글쓰기 자체는 Ulyesses가 더 편하게 되어 있는데 MarsEdit가 원래 블로그 관리를 위한 앱이기 때문에 다수 블로그를 함께 관리하려면 이 앱이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였다.


이제 Ulyesses가 여러 블로그를 등록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테스트를 위해 이 글을 올려본다. 그리고 이제 마크업 기능도 제대로 익혀서 활용할 때가 되었나 싶다. 별다른 이유없이 글자를 굵게 해 보거나 divider를 넣어 보거나 한 것은 마크업의 효과를 한번 보려고 한 것이다.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컴플라이언스&윤리전공 강좌 관련 제 관련 얘기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미국법학과에 컴플라이언스&윤리전공이 개설되고 이번 학기에는 전공 개설 요건을 갖추어 드디어 출범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컴플라이언스 관련 전공이 학위과정으로 개설된 것으로 알고 있다. 조창훈 전임교수의 열정과 수고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조교수와의 인연으로 나도 그 전공에 겸임교수로 이름을 올리고 있고, 이번 학기에 공정거래&컴플라이언스과목을 맡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튼 수강신청자가 없어 내 강의는 폐강되었다. 이번 가을에 워낙 바쁜 일이 많아 내심 강의 걱정을 많이 하던 차라 솔직히 마음이 가벼워졌다. 한편으로는 조교수의 노력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미안함도 든다. 학생들이 그다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과목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 같기도 하고, 강사로서 이름을 올린 내 탓인 듯 싶기도 하고 해서 그저 맘이 가볍기만 하지는 않다. 그래도 다른 할 일이 많아서 부담이 준 것은 fact!

ISO 37001 인증심사원 양성 교육 합격, 그리고 심사원보 등록신청

8월초에 ISO 37001 인증심사원 양성 교육을 듣고 시험을 치렀는데, 이렇게 합격증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리고 제3자 인증기관인 PCAA에 심사원보 등록신청을 완료하였다.
심사원으로서 활동하려는 계획은 아직 없지만, 심사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했고, 한편으로는 자칭 컴플라이언스 전도사로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다. 교육을 받으면서 잘 한 선택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한국투명성기구와 한국조폐공사간의 청렴업무협약 체결식에 다녀왔습니다.

한국투명성기구와 한국조폐공사의 청렴업무협약서와 사진

한국투명성기구에서는 꾸준히 공공기관들과 청렴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협약내용의 실천을 위해 각자 할 수 있는 일들을 좀 더 구체화하고 실행하려고 노력해야겠지요. 사회에 가치를 더할 수 있는 일들은 참 많은데, 그 중에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으면 운이 따르는 것이고요. 어쩌다 한국투명성기구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남을 이해하려면 자기를 이해하여야…

자기자신에 대해 남에게 얘기한다는 것은 언제나 쑥스럽고 어색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제 집을 찾아주신 여러분들께 간단히나마 제 소개를 할까 합니다.

제 부모님 신혼적 사진입니다. 아무래도 제 시초는 부모님의 결혼이니까(물론 아버님의 부모님,어머님의 부모님, 그리고 그 분들의 부모님, 이렇게 올라가다보면 북경인 또는 네안데르탈인까지 올라가야되겠죠…음…역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이나 저나 억세게 운좋은 사람들입니다. 숱한 천재지변이나 전쟁, 질병 등을 모두 이기고 생명을 이어가고 있으니까요..) 두 분 좋은 시절 사진을 올립니다.

결혼식은 제가 태어난 곳에서 하셨더군요. 대구시 서구 비산4동 319번지…중학교때까지 살던 곳이라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군요. 지금쯤은 도로가 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집은 이미 수용되었거든요. 그 집 담이 블록담이었는데 한참 예민한 사춘기시절에 담이 무너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담이 무너졌는데 다행히 사고는 없었지만 그 담 다시 쌓을 때까지 골목 지나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부끄러워 세수를 부엌에서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지난 일들은 모두 재미있는 이야기꺼리가 되는 것같습니다.(당시에는 얼마나 황당했던지!)

1963.3.18.(음력) 위 주소에서 출생(그 방에서는 아들만 낳을 수 있다는군요)

7살 때 서부국민학교에 입학하였는데 그 학교는 역사가 깊어 전설도 있습니다. 소풍가는 날엔 꼭 비가 오는데 학교수위가 이무기(용이 되기 직전인 뱀)를 죽였다고 하더군요.

3학년 때 서도국민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제가 3회졸업생이랍니다. 우리 동문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군요. 국민학교 시절에 제가 상당히 개구쟁이 짓을  많이 했었지요. 음…일일이 나열하기에도 이 난이 부족하고 또 고리타분한 얘기들이라서 생략.

계성중학교시절…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얘기들을 모두 적으려면 장편소설로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이 시기엔 제가 내성적이기도 해서 책에 파묻혀 지내기도 했었고…

영신고등학교는 씨름으로 유명한 학교입니다. 이봉걸 선배가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백두급 씨름선수인 친구와 로울러스케이터 타러 갔었는데 커브틀다가 바퀴가 굽어 버리는 사고(?)도 있었지요. 물론 다시 발끝으로 구부리니까 원상으로 돌아가더군요(속골병 들었을 겁니다, 그 로울러스케이트!)

81년도에 경북대학교 법과대학(당시 법정대학)에 미달로 합격하고(81년에 입시제도의 변화 때문에 거의 전 대학이 미달사태. 행복한 세대인가요?) 본격적으로 청춘을 만끽하고 살았지요. <솔로시절에 대한 약력 끝>

지금 옆에서는 아내가 가장 잘 나온 가족사진 고른다고 사진심사중입니다. 아마 여기에 올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군요. 그럼 가족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최근까지 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관으로 계시다가 이사관승진과 함께 단기 해외연수를 가시게 된(2000.2.26. 출국예정) 임영철국장님입니다.
실물은 이 사진보다 훨씬 더 낫답니다(아부는 출세의 지름길!). 반곱슬머리라서 헤어스타일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 외모의 한계입니다만 키도 크시고 인품도 훌륭하시고 합리적인 사고방식 등 보기 드물게 훌륭하신 분입니다. 더 자세한 개인적 사항은 개인적으로 국장님께 질문하시기 바랍니다(연락처는 일단 이 사이트를 이용하시길 바람). 아 참! 당연히 기혼입니다.
제가 국장님 사이트도 만들어드린다고 했으니 만들어지면 국장님을 여러분들이 직접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군요.

다시 제 이야기로 돌아오면, 저는 1993.12월 초에 공정거래위원회(당시는 경제기획원 소속) 제도개선과에 수습사무관으로 와서 약관심사업무를 시초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업무를 시작하였습니다.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서 대구지방공정거래사무소 경쟁과장, 지도과장을 역임하기도 했지요.

지금은 심판관리관실 소속으로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주된 관심은 공정한 경쟁질서라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는지(또는 실현될 수 있는지)입니다만 이를 위해서는 외국제도에 대한 정확한 지식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법체계속에 외국에서 계수된 독점금지법 또는 경쟁법이 융화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실무자로서는 힘이 부닥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열심히 하여야겠지요!

시간나는 대로 틈틈이 개편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0.2.14.

이 자료는 2000년에 만든 홈페이지에 제 소개 페이지로 만든 것입니다.  글에서도 젊은 느낌이 드네요.

2004년 이후 잡담/일상생활 자료 수록

2004년무렵부터 만들었던 블로그 자료를 모두 수록했습니다. 1999년부터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만, 그때는 서울대학교 근처 신림동고시촌에서 ‘경제법’ 특강을 할 때라, 수강생들을 위한 자료 게재와 질문답변을 위한 장소였더랬습니다.

개인적인 얘기를 본격적으로 게재하기 시작한 것이 이글루스라는 서비스를 이용해서 블로그를 하면서부터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자료는 2004년부터 작성한 것이네요.

Microsoft Live Writer 설치

윈도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블로깅툴로 어떤 것이 있는지 검색해 보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Live Writer라는 무료앱이다. 일단 설치기념으로 한번 글을 써 본다. 첫 인상으로는 역시 윈도우보다는 맥에서 글을 더 자주 쓰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알파스캔U2804, U2814 간략한 사용기

e1848be185a1e186afe18491e185a1e18489e185b3e1848fe185a2e186abu2814-2016-02-19-18-40.jpg요즘 맥북프로레티나 (2015년 신형)13인치를 사용 중인데, 아무래도 화면 크기가 아쉬워 사무실에 사용하려고 4K가 지원되는 모니터를 찾아 보았다. 검색해 보니 Dell사, 삼성, LG 등에서 출시한 제품이 눈에 띄지만 가격대가 높아 선뜻 선택하기 힘들었다. 가격대를 30만원에서 50만원 정도로 설정하니 알파스캔과 크로스오버 제품으로 압축되었다.

최종적으로 구매한 것은 알파스캔의 U2804. 그리고 이 제품에 만족해서 하나더 구매한 것이 10만원 정도 더 비싼 U2814 제품이다. 이 제품들을 구매하고 사용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잠깐하려고 한다.

일단 내가 외부모니터를 사용하게 된 배경은 그저 레티나화면을 지원하는 높은 해상도의 큰 화면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임, 디자인 등 다른 용도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또한 그런 용도로 사용하게 될 일은 당장은 없다. 그런 관점에서 이 제품은 상당히 만족스럽다. 다만 몇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처음 U2804 모델을 구매한 후 모니터가 켜지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분명히 외부모니터가 연결되어 있는 것은 맞는데 화면이 켜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AS를 요청했고 기사분이 모니터가 있는 사무실로 방문했다. 웃기는 것은 기사분이 왔을 때는 전혀 문제 없이 켜지는 것이다. 그래서 화면이 켜지는 문제는 해결되었는데 당초에 동봉된 HDMI 케이블이나 내가 프리스비에서 구매한 HDMI 케이블을 연결하니 화면이 계속 지지직되는 것이다. 몇 번을 뺏다 꽂았다 해도 똑 같았다. 그래서 다시 알파스캔 상담실로 전화했더니 DP to MiniDP 케이블을 보내주었다. 이 케이블을 연결한 후 지지직 되는 현상이 사라졌다. 그 이후에는 U2804에 대해 아주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집에서도 대형화면을 쓰기 위해 이번에는 신제품인 U2814로 구매했다. 이 제품은 HDMI케이블이나 DP to MiniDP케이블이나 도저히 적절한 해상도가 나오지 않았다. 2804의 경우 DP to MiniDP케이블을 연결하면 디스플레이설정에서 1920X1080이 자동으로 잡히고, 깨끗한 화질과 적당한 크기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2814의 경우에는 케이블을 이것 저것 다 연결해도 아예 저 해상도 선택 자체가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SwitchResX라는 앱을 사용해서 해상도를 설정해 봐도 화면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알파스캔 상담실로 전화를 여러번하고 그랬지만 결국에는 방문AS를 받는 수 밖에 없었다. 방문예약을 하고 난 후 다시 연결해 보니 어렵쇼! 1920X1080해상도가 자동으로 잡히지 않는가! 게다가 2804의 경우 HDMI 케이블을 연결해도 깨끗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알파스캔이 윈도우용으로 만들어지고 테스트된 제품이라 윈도우에서는 이런 문제가 거의 없는 것 같은데, 맥OS에서는 서로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했나 보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 이런 문제로 급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고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분하게 일을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저절로 문제가 해결된 것 같다. 아무튼 비록 글로벌대기업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지만 알파스캔 같은 회사가 더욱 발전하기를 바란다.